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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간-하나님의 형상
이름: 하동


등록일: 2011-06-04 17:53
조회수: 656 / 추천수: 155


인간-하나님의 형상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인간에 대한 이해에서, 도덕 선생님께서는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은 존귀하다고 가르쳐 주시고, 과학 선생님은 인간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은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하였는데 왜 존귀하지?’
학교 다닐 때 제가 제일 먼저 배운 인간에 대한 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한 ‘호모 파베르’ 즉 ‘인간은 연장을 만드는 동물이다’도 기억이 난다.
진지하게 자신에게 물어보라. 나는 과연 동물과 같은가? 아니면 다른 동물보다는 좀 더 진화된 동물인가? 당신은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는 것이 과연 용납이 되는가?
만약 사람들이 나에게 욕을 한다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욕이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용하는 욕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부분 거기에는 짐승에 빗댄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인간을 가리켜 짐승에 비유한 것을 들을 때, 그것이 욕이 아니라고 생각되는지는 몰라도, 너무 쉽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한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이 발달하고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현대인들은 사람을 기계나 상품으로 간주한다. 생산성이 얼마나 되는지, 상품가치가 있는지를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모든 근로자들과 모든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이 해당될 것이다.
나이가 많거나 병들어 생산성이 떨어지면 퇴출 대상이 된다. 상품성이 떨어지면 아무리 인기 있는 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세계에서 버려진다.
우리가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사실은 나 자신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나의 동물성이나 기계성 혹은 상품성인가? 아니면 나의 인간성인가? 나는 동물이나 기계나 상품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인간이기를 원하는가?
나는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거나 기계 혹은 상품으로 여기는 인간에 대한 정의들을 거부한다. 나는 사람이기를 원하며,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사람은 자신을 누구라 생각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고 꼴지어진다. ‘사람은 동물이다’라는 교육을 받고 자라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쳐 어느 순간 자신과 타인을 동물 대하듯 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동물처럼 행동하게 된다. 사람을 기계나 상품으로 보게 되면 그의 인간성은 메마르게 되고 딱딱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는 소모성 존재나 일시적 존재로 전락되어 그 기능을 상실하거나 상품 가치가 떨어지면 버림을 당하게 되며 자신 또한 쓸모없는 자로 간주한다.
사람의 사람됨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어떤 인간상을 품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 품고 있는 인간상이 인간의 본성에 영향을 미친다. 스스로 도덕적 삶을 살지 않는 동물이나 기계나 상품이 인간에게 선한 도덕적 충동을 심어줄 수 없다.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에 대해 무엇이라 정의할까?
☞ 창 1: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동물이나 기계나 어떤 상품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진화론과 산업의 발달로 인해 인간 본연의 독특한 특성을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기타 다른 피조물과 구별 짓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인간 본연의 모습이 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이 그처럼 존귀한 까닭이 있다.
그럼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 뜻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만들어졌다’, ‘하나님을 닮았다’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면 하나님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성경 창세기는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지만, 그것은 태초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태초 이전으로 소급되는 어떤 사실이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은 무엇보다 하나님이 만물보다 먼저 계셨음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만물보다 먼저 계셨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잠깐 살펴보도록 하자.
요한복음 17장 5절과 24절을 보면, 창세 이전에 창세 이전에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사랑을 기초로 한 인격적 관계가 있었다고 했다. 베드로전서 1장 20절을 보면,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한 한 계획을 갖고 계셨으며, 에베소서 1장 4절에는 창세전부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을 보게 된다. 선택이란 하나님이 사상과 의지를 갖고 계신 분이심을 증거하는 용어이다. 또한 디모데 후서 1장 9절을 보면, 창세전부터 부르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는 뜻을 함께 할 자를 찾고 계시는 분이심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디도서 1장 2절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분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과학은 아버지가 있으니 자식이 있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가 분명하다. 과학에서는 무(無)에서 유(有)가 나올 수 없으며, 비(非)생명에서 생명이 나올 수 없다. 유(有)에서 유(有)가 나며, 생명에서 생명이 난다.
사람이 사랑에 기초한 관계를 꿈꾸고,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생각을 가지고 의지의 힘으로 선택하며 약속을 하는 까닭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그와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루리는 하나님을 닮은 자로 창조되었다.

그렇다면, 타락이란 무엇일까? 로마서 1장 22절에서 23절을 보자.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인간의 타락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꾼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품성과 그 뜻을 반영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육체적 본능을 쫓고 탐욕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우리가 새와 짐승과 동물 모양의 우상임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우리 자신을 새와 짐승과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지 않은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떠나 자기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그 삶은 자기의 배를 채우기에 급급하고 목숨을 부지기에 전전긍긍하며 자기 이름 석자에 목숨을 거는 새와 짐승과 동물과 같은 자로 떨어지는 것이다.

2. 예수님은 누구시며 왜 그분은 사람이 되셨을까?
빌립보서 2장 6절에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곧 하나님 자신이라고 했다. 골로새서 1장 15절을 보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4장 4절에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다.
인간 예수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런데 왜 그분께서 사람이 되셨는가?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그의 교훈과 자아희생적 사랑의 삶을 통해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타락함으로 잃어버린 우리의 본래의 모습 곧 하나님의 형상을 알게 하고 그것을 찾게 하고자 함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서 다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이었다.

3.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인가?
골로새서 3장 10절을 보면 “새 사람”으로서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했다.
에베소서 5장 1절에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온전해 질 때까지 그리스도를 본 받아 그리스도께서 사신 하나님을 닮은 생애의 삶 곧 자아희생적 사랑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아이가 부모를 닮았다는 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이의 모습에 그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을 닮은 자로 지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하나님의 모습을 담아 놓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을 보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래 인간이란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존재로써,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증인이다.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하나님처럼 계획하고, 하나님처럼 선택하고, 하나님처럼 뜻을 펼치며, 하나님처럼 약속을 하는, 곧 보이는 나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음을 받고 존재하며, 타락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목적이자 이유이다.
하나님은 보이는 인간 뒤에 숨어 계신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드러내지 않고 나 자신을 드러내었을 때, 우리는 영화롭게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짐승과 버러지의 모습으로 떨어진다. 우리가 하나님을 드러낼 때, 높고 영화로우신 그분만큼 우리 역시 영화롭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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