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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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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 미디어 등록일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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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왔다. 그런 삶을 오늘도 내일도 살아갈 것이다. 그들과의 만남 중에 어떤 만남은 의도된 만남이었고, 어떤 만남은 짧은 시간 동안 그냥 스쳐 지나간 만남이었다. 어느 날 문득 그렇게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표적으로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어 떠오르는 분들을 소개하자면 원근이 아저씨, 동네 천우당 할아버지,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곰곰이 기억해 보니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가수, 지위나 학식이 높은 분들도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그들을 만났을 때 가슴이 뛰었고, 그들과 접촉한 손은 오랫동안 씻지 않고 그 접촉의 감격을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대단한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가니 내 기억 속에는 잊혀진 존재들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굳이 생각하려고, 떠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금방 떠오르는 분들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한 분들이다.


​원근이 아저씨(​어린 시절 옆집 아저씨)
나는 어린 시절 경북 의성이라는 시골 지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우리 가정은 그리 넉넉한 가정이 아니었다. 부모님과 할머니께서 열심히 생활하셔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알뜰한 가정이었다. 어린 시절, 먹고 싶은 것도 많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었다. 그때 원 없이 먹고 싶었던 것은 당시에 유명한 마산 땅콩캐러멜이라는 캐러멜이었다. 그 캐러멜을 입에 넣고 먹으면서 단물을 빼어 먹을 때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가난한 형편에 그 땅콩캐러멜을 많이 먹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저 땅콩캐러멜을 내가 원 없이 먹어 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원근이 아저씨가 나에게 마산 땅콩캐러멜 한 봉지를 주면서 말씀하셨다. “우리 상봉이가 캐러멜을 참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아저씨가 사 왔다. 실컷 먹어라.” 원근이 아저씨가 주신 마산 땅콩캐러멜은 가난한 시골 아이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기적의 캐러멜이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이사 가셔서 연락은 끊겼지만 난 지금도 그 원근이 아저씨를 위해서 기도한다. 아저씨 하는 일마다 잘되기를 말이다.


​천우당(​한약방 이름)​ 할아버지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야구를 많이 했었다. 그때 공이 자주 담장을 넘어서 천우당 할아버지댁으로 넘어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내 기억으로 한 번도 우리를 꾸중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공도 뺏지 않으셨다. 공이 넘어가면 공을 가지고 밖으로 나오면서 한마디 하셨다.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놀아라.”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칭찬도 아끼지 않으셨다. “이놈 많이 컸구나.” “힘이 많이 세졌네.” “팔뚝이 많이 굵어졌네.” 등등의 말로 우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격려해 주셨다.


​6학년 담임 선생님
​난 초등학교 시절 참 개구쟁이였다. 학교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번은 과학 시간에 고기를 태우면서 그 변화를 지켜보는 실험이 있었다. 학생들 몇몇이 모여서 조를 짜고 원탁 실험실 테이블에 앉았다. 각 조마다 알코올램프와 작은 고기 한 덩어리가 주어졌다. 그 고기에 열을 가하면서 일어난 변화를 기록하고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알코올램프에 불을 붙이고 고기가 익어 가니 고소한 냄새가 났다. 먹음 직도 하고 보암 직도 하여서 나는 그 고기를 입에 넣고 말았다. 한 점 먹으니 더 먹고 싶어서 다른 조원들의 고기도 훔쳐 먹고 말았다.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말썽꾸러기 학생 취급을 받았다.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일로 선생님을 당황케 하고 뜻하지 않게 괴로움을 드렸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내가 전학 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날 방과 후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 맞은편에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 중학교 형들에게 둘러싸여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형들이 나를 에워쌌고 순간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 우리 선생님이 다가오셨다. 키도 작으신 연약한 여선생님이 막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에워싼 건장한 중학생들을 흩으시고 나를 구해 주셨다. 그리고 혹 그 형들이 나를 또 괴롭힐까 봐 꽤 먼 거리를 나와 동행해 주셨다. 그때 내가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선생님은 모르실 것이다. ‘선생님 저는 늘 선생님을 난처하고 힘들게 하는 학생인데, 그냥 멀리서 피해 가실 수도 있었는데 그 위험에서 저 같은 학생을 구해 주시니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했다.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람들과 그 경험을 다 기록하면 굉장한 페이지를 할애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분들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그들을 향한 감사와 그들의 안위(安危)와 장래를 위해서 맘속으로 기도하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때론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사람들도 만났지만 그들의 이름은 내 머리속에 남아 있지 않다. 한데 왜 원근이 아저씨, 천우당 할아버지,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늘 언제나 선명하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을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분들이 나에게 ‘사랑’을 남겼기 때문이다. 원근이 아저씨는 캐러멜을 먹고 싶어 하는 가난한 어린이에게 캐러멜 한 봉지로 사랑을 남겼고, 천우당 할아버지는 늘 인자한 미소로 격려라는 사랑을 남겼고,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자신을 힘들게 하는 학생이었지만 어려움을 무릅쓰고 제자를 구출한 용감한 사랑을 남기신 분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난 내게 사랑을 남기신 이분들의 이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내게 지워지지 않는 사랑을 남기신 그분들의 아름다운 이름들을 기억하면서 나도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남기는 삶을 살고 싶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녀들에게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무언가를 남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남기는 것이 긍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참 좋은 것, 필요한 것을 남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 사랑을 남길 때 이 또한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오랫동안 따뜻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나와 가까운 가족과 나를 있게 한 우리라는 여러 관계의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달이다. 요즘은 그런 관계 속에서 사랑이 남는 것이 아니라 앙금이 남을 때가 참 많이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나부터 나와 가까운 가족들, 오늘과 내일의 시간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앙금이 아닌 사랑을 남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 백상봉 진주솔밭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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