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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 꽃잎 열리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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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사미디어 등록일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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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님이 보낸 엽서가 속달로 도착한 것이다. 매서운 칼바람 부는 세상에 용감하게 고개 내민 매화 아씨가 대견하여 탄성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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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설중매(雪中梅)를 만나게 되었다. 거무튀튀한 겨울나무들에 둘러싸여 연분홍 꽃물로 얼굴 붉히며 다소곳이 세상 구경 나온 홍매화가 반갑고 반갑다. 사람들이 오가는 오솔길에 서 있지만 나와 자주 대면하니 내 소유인 듯 정이 들었다. 


오래 지속되는 전쟁 소식, 가까운 나라의 지진과 재난, 분단된 동족으로부터의 위협적인 발언으로 마음 졸이며 사는 날들이다. 새해가 와도 새해 같지 않은 날을 지내고 있는데 우울한 마음 위로해 주려고 엄동설한에 눈을 떴나 보다. 곧 다가올 봄을 예고하는 매화의 동그란 눈망울을 보니 움츠러든 마음이 펴진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천천히 산책을 즐기며 길가에 핀 꽃들을 어루만지는 때라고 투르게네프 시인은 말했는데 호젓한 산책길에서 만난 홍매화 꽃망울을 살포시 만져 보며 나만의 비밀스런 즐거움을 누린다. 


매화는 예로부터 소나무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로 일컬어진다. 또한 군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소질을 모두 지니고 있다 하여 난초·국화·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도 불린다. 추위 속 기품 있는 자태로 은은한 향을 품은 매화는 적적한 곳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옛 선비들의 벗이었다. 외로움과 설움을 안고 유배지에서 한을 삭이며 세월을 낚은 성현들의 친구였다. 강진에서 20여 년을 귀양살이한 다산 정약용도 매화나무를 곁에 두고 고독을 승화시켜 학문에 정진했다. 


입김이 얼어붙는 추위를 가르고 고고히 하늘을 향하고 있는 꽃망울을 보며 너도 오늘 설한풍(雪寒風) 잘 견디니 나도 한 날 용감하게 살아낼 것이라고 다짐한다. 부드러운 꽃망울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끼며 따뜻한 연대감마저 느낀다. 죄악의 어둠이 짙어 가는 세상에서 날로 힘겨워지는 인생살이지만 안으로 인내의 꽃 품고 새날을 기다리자는 응원을 받는 듯하다. 


금방 열릴 것 같은 꽃봉오리는 며칠이 지나도 여전히 입을 꼭 다물고 있다. 한파가 이어지니 여린 꽃잎을 펼치기가 조심스러운 게다. 겹겹이 꽃잎 포개어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꽉 뭉쳐진 둥근 꽃구슬 안으로 센 바람도 차가운 눈발도 스며들 틈이 없다. 안심이다. 꼭꼭 포개진 힘으로 추위를 막아 내는 매화를 보며 날로 거세지는 세상의 한파도 서로 감싸고 보듬으며 참아 내야 함을 배운다. 지구별에 함께 사는 동료끼리 서로 안아 주고 다독이는 것이 생존의 비법임을 알겠다. 속히 이웃 나라의 전쟁이 종식되고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길 손 모아 기도한다. 갈수록 커져 가는 나라 안의 세대 간 당파 간 갈등의 골이 메워지고 연대와 협력으로 하나 되길 마음 다해 염원한다. 잊고 있던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는 따뜻한 문자, 격려의 전화, 작은 선물로 나부터 작은 온기를 만들어 보자. 연결된 마음, 온정의 통로로 희망의 꽃망울을 키워 가야겠다.


매일 조바심 내며 매화나무 아래를 서성이던 어느 날, 드디어 한 송이 꽃이 벌어졌다. 햇빛을 가장 잘 받는 양지에 다섯 꽃잎이 해사한 웃음을 방싯 짓고 있다. 신비하고 경이롭다. 겨울을 밀어낸 새 봄의 미소다. 발돋움으로 매화가지에 가까이 다가가 달콤한 내음을 깊이 들이마신다. 기분 좋은 그윽한 향이 세포 깊숙이 스며든다. 첫 눈을 뜬 고운 자태의 매화도 그를 찬양하는 동무를 만난 기쁨에 더욱 짙은 향기를 뿜어낸다.


홍매화 꽃잎 열린 날, 내가 받은 따스한 기운을 나누고 싶었다. 친정어머니가 보낸 콩을 항아리에서 한 대접 꺼냈다. 통통하게 불려서 곱게 갈아 베보자기에 거른다. 여러 번 치대고 주물러서 노랗고 진한 국물을 뽑아낸 후 휘휘 저으며 끓인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콩물이 설설 끓어오르면 간수를 넣고 불을 끈다. 몽글몽글한 순두부가 만들어진다. 나와 호흡이 척척 맞는 시어머니와 함께 만두도 빚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야채를 다지는 동안 인정을 나눌 대상을 각자가 떠올렸다. 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여섯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가정을 생각했고 나는 홀로 겨울을 지내는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눈에 밟혔다. 종일 음식을 만들어 해거름에 배달에 나섰다. 뜻밖의 음식 보따리를 받아 드는 얼굴이 새로 핀 매화꽃처럼 환하다. 


하루 내내 손놀림한 노동의 고단함을 내려놓고 잠시 쉬고 있는데 ‘카톡’ 울림이 왔다. 내가 봉사하고 있는 장학회의 소액 기부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는 반가운 메시지다. 따르릉 전화도 울린다. 다섯 구좌로 돕겠다는 또 다른 기쁜 소식이다. 오늘 하루 세 가정에 음식을 나누었고 또 다른 세 곳으로부터 기부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날 오간 따스한 사랑의 흐름이다. 홍매화 꽃물 오른 날 피어난 나눔의 꽃이다.


얼마 전 장학금을 받은 학생의 글이 생각난다. 튀르키예에서 와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공부를 마치면 본국으로 돌아가 한국어 센터를 운영하고자 하는 당찬 꿈을 품은 청년이다. 작년에 그 나라에서 일어난 큰 지진에 피해를 입은 가정인데 어렵사리 유학을 왔다. 기숙사 비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받고 우리 장학회에서 도와주었다. 그녀는 감사의 마음을 듬뿍 담아 쓴 손 편지를 가져왔다. 맞춤법도 정확한 단정한 글씨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저는 고향에서 한국어 교육, 한식, 문화, 무용, 역사 등을 제공하는 기관을 열고 싶습니다. 한국과 튀르키예 사이의 다리가 되고 싶고 두 나라 사이의 유대도 강화하고 싶습니다. 이 소원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장학회 봉사자들이 여는 바자회 수익과 후원자들이 보내오는 정성스런 기부금을 모아 이런 학생들을 돕고 있다. 젊은이들의 삶을 꽃피우는 보람된 사역이다. 세상은 추운 소식들이 넘쳐나도 나누고 베푸는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겨울 끝자락에 열린 눈부신 매화 꽃잎은 이제 곧 천지를 꽃동산으로 물들일 봄날의 설렘과 함께 서로의 따뜻한 연대로 송이송이 사랑의 꽃을 환하게 피울 수 있다는 약속도 물고 왔다. 



​권영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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