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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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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월호 2024년 4월호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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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 찍힌 삶의 여정

뇌성마비를 넘어 

낙인 찍힌 삶의 여정


니 아녜테이 아코계람


뇌성마비연합연구재단(CPARF)은 전 세계적으로 약 1,700만 명이 어떤 형태로든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1 나의 고국 가나에서는 2023년 기준으로 3,410만 명 인구 중 2만 2,000여 어린이(인구의 0.07%)가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고 한다.2 뇌성마비를 안고 살아가는 성인에 대한 정보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가운데 나는 뇌성마비 환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 이름은 니 아녜테이 아코계람이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노키 포포라고 부른다.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에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지만 나의 큰 사촌은 내 이름을 이노키로 바꾸고 애완동물 이름 포포를 추가하여 나의 별명은 이노키 포포가 되었다.  

나는 1990년 3월 8일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태어났다. 생후 일주일이 지나기 전에 부모님은 내 피부와 하얀 눈자위가 노랗게 되자 황달(아기의 피에 빌리루빈이라는 색소가 많아질 때 발생하는 상황)을 의심했다. 치료의 한 방법으로 부모님은 며칠 동안 이른 아침, 내게 햇볕을 쫴 주었다. 햇볕에서 발견되는 청색광 스펙트럼은 과도한 빌리루빈을 쉽게 분해하여 신체가 이를 배설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부모님은 나를 코르부 교육병원으로 급히 데려갔고, 의사들은 수혈을 통해 몸에 있는 나쁜 혈액을 좋은 혈액으로 교체해 주었다. 그런 뒤 나를 자외선 아래에 두어 치료했다.

3~4개월 후 유감스럽게도 부모님은 나의 신체 발달이 정상아보다 더 느리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를 병원에 다시 데려갔지만 나를 검사한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뇌성마비를 앓다

침을 흘리고 규칙적으로 경련이 있어도 의사는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지 못했다. 병원은 내게 제2의 집이 되었다. 고열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직행했다. 짧은 기간 물리치료를 받기도 했다. 의사는 침을 흘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손목 밴드를 처방해 손목 밴드를 왼손에 착용하고 침이 나올 때마다 닦아 내게 했다. 의사는 카모킨이라는 말라리아 치료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우리 가족은 그 약에 일요일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고열을 치료하는 날이 주로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24세 때 나는 나의 문제를 스스로 알아내기 위해 애썼다. 내 상태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여러 시간 인터넷을 뒤졌다. 마침내 내가 뇌성마비(CP)라는 질병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뇌성마비는 ‘사람의 이동 능력과 균형 및 자세 유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장애군’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가장 흔한 신체 장애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출생 1,000명당 뇌성마비 발병 사례가 1~4건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가나에서는 뇌성마비 사례가 특히 높아 출생아 300명 중 1명꼴로 그 사례가 발병한다.3 가나에서는 치료 및 사례 관리 기회가 제한되어 있어서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나는 조롱과 괴롭힘의 대상이 되어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나를 침쟁이라고 자주 놀렸다.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전염시킬까 두려워 나와 놀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그들의 괴롭힘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괴롭히는 행동에 신경 쓰지 않기로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끈질긴 괴롭힘을 참을 수 없어서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결국 공격은 줄어들었고 나는 공부에 집중할 시간을 얻었다. 


뇌성마비와 함께 가는 여정 

교회에서는 안식일학교 시간에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었다. 나의 아버지는 어린이 사역 담당자이자 어린이 안식일학교를 맡은 어린이부 부부장이었다. 교회 아이들 대부분이 나의 친구였고 교회 선생님들은 실제로 친인척 관계인 이모와 삼촌이었다. 나는 열셋째 안식일학교 프로그램에서 특창을 부르고 성경 본문을 낭송하는 등 모든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패스파인더 활동에서는 아빠가 대장이고 엄마가 교사였기 때문에 모든 순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캠핑, 카약, 암벽 등반, 등산도 했다. 최근에는 교육을 받고 마스터 가이드가 되었다. 지금은 내가 다니는 지역 교회에서 패스파인더반을 가르치고 있다.

포포 뇌성마비 계획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마스터 가이드 지도자 훈련 때문이다.

뇌성마비를 안고 살면서 그것이 피해자와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있기에 대중 특히 이 질환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부모와 간병인에게 뇌성마비에 관해 인식시키는 것을 나의 사명으로 삼았다. 또 교사와 학생들이 뇌성마비를 이해한다면 환자를 대할 때 더 배려하리라 생각했다.

2017년 10월, 나는 비영리 단체인 포포 뇌성마비 이니셔티브를 설립했다. 나의 목표는 부모(특히 뇌성마비 자녀를 둔 어머니)를 격려하고 해당 상황에 대해 대중을 교육해 이 질환을 안고 생활하는 가족을 지원하는 것이다. 나의 비전은 뇌성마비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모든 이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내 가족과 몇몇 친구는 내가 소셜 미디어에 이 계획을 홍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내 꿈을 실현하는 데 꼭 필요한 창업 자금을 제공했다. 나와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다.4

내가 속한 비영리 단체가 교회의 선교에도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가능성이라는 변화의 렌즈를 통해 장애와 상실을 대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각자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일의 핵심은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은 그들의 능력이 복음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역 합회와 긴밀히 협력하며 뇌성마비 환자들의 상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https://www.childbirthinjuries.com/cerebral-palsy/statistics/ (Accessed February 6, 2024)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779979/ (Accessed February 6, 2024)

https://www.childbirthinjuries.com/cerebral-palsy/statistics/ (Accessed February 6, 2024)

4 우리 조직의 이사와 총무 역할을 자진하여 제안한 사람 중에는 대체의학 의사인 故 나나 콰쿠 얌피 목사가 있었다. 앨버타 록슨 물리치료사, 벤저민 사카르 변호사, 재클린 아산테-멘사 변호사, 내 여동생 앤절라 아코계람도 있다. 이들은 자신의 시간, 돈, 봉사를 재단에 기꺼이 후원했다.


니 아녜테이 아코계람 뇌성마비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비영리 교육 기관인 포포 뇌성마비 이니셔티브 LBG의 창립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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